안호원 목사, 단에서 설교만 한다고 목사 아니다, 행하는 봉사 실천 ‘강조’
야간노동 겸하며 재원 마련, 매년 ‘봉사활동’과 ‘기부운동’까지 실시

곽중희 2019-12-31 (화) 14:11 1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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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 목사의 행하면서 가르친 실천 신앙이 시민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인 안호원 목사(72)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월남참전고엽제 전우들을 초청, 오찬을 나누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에도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월남참전 전우 초청 오찬을 나누며 ‘위로 잔치’를 한 안 목사는 년 말을 맞이해 월남참전 고엽제 전우들을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 자유 수호를 위해 월남전에 참여했던 전우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열린 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를 역임한 안 목사는 2014년부터 매년 불교계 스님들과 고엽제 전우들과 철원. 파주 등 전방에 있는 충혼탑과 유엔군 참전비등을 찾아 헌화와 함께 기독교 대표로 추모예배(종무관. 군목)를 인도하며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40여 년간 기자 생활을 역임한 안 목사는 야간노동을 하면서 재원을 마련, 매년 개척교회 목사와 어르신 초청 위로 잔치 등의 봉사활동을 묵묵히 실천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안 목사는 2008년부터 법무부 청소년 상담위원으로서 비행 청소년들 대상으로 상담 활동과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운동을 함께 하며 매달 1회 영등포관내 우범지역을 순찰을 통해 범죄 예방을 위한 방범활동을 하고 있다. 

 

예비역 군목으로 29년간 수도방위사령부 장병고충처리 상담 관을 역임한 안 목사는 왕성한 문학 활동으로 일본 문화 예술 공로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또한 연극인으로 오페라 합창단으로 출연하기도 하며 40회가 넘는 합창 공연에 출연하며 재능을 발산했다. 그의 50년이 넘는 나눔 봉사활동은 대한민국 ‘기네스 북’에 등재되고 ‘도전 한국인’(명인 인증 6호)에 등재됐다. 이외에도 ‘한국의 인물-21C인명사전(후즈&후즈)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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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도 수도권 7개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에 쌀(40K),가래떡, 소고기 등 일용품을 각각 전달했다. 이외에도 관내 어려운 이웃과 경비원에게 명절 선물 및 격려금을 전달했다. 재원은 모텔청소를 하면서 받는 수입과 수거한 빈병을 판 수입금이다. 이 같은 봉사를 50년째하고 있다. 한 때는 공무원이었던, 인권운동가였던, 언론인이었던 안 목사는 자신 스스로를 내려놓고 늘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혼자서는 1000원짜리 ‘사발 면’으로 때우는 때가 많은 데, 그 이유는 남을 돕기 위해 비용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목사라는 직분을 가졌기에 더욱 하기 힘든 일이었음에도 안 목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목사라는 직분은 높고 낮음의 직분이 아니라 세상 속에 뛰어들어 믿지 않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 등을 두드려 줘야 할 곳에 있는 사람까지도 어우르는 자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자기 스스로도 여유롭지 않지만, 늘 그들과 함께 해왔다. 

 

안 목사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목회자가 하는 일이죠. 목회자이니 교회 안에서 설교만 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 역시 목회자가 해야 할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 안의 목회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현장의 목회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안 목사가 자신의 손으로 번 돈을 갖고 다른 이들을 돕는 가장 큰 이유는 ‘섬김’이라는 단어 때문이라고 했다. 목회자는 직책의 구분일 뿐 상위 직책이 아닐 뿐 더러 섬기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몸서 체험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90년대 중반에는 3년 동안 필리핀 선교 지를 도우며 공원에 놀이기구(철봉 등 5개)를 설치해주기도 하고, 우즈베키스탄 교회에 의류를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안 목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준 것을 전달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겸손해 한다. 50년 이상을 이런 마음으로 묵묵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는데, 특이한 것은 안 목사 스스로 노동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손을 벌리려 하지도 않고, 모텔 청소 등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앞서 말한 ‘모텔청소 노동’ 역시 실천신학대학원 동기인 목사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개척교회를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목회상담학박사이자 명예 교육학박사, 사회학박사, 문학박사이기도 한 안 목사는 지난 30여 년 간 YTN 등 일간지(의학전문대기자)전문지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3개 인터넷 신문에 고정 칼럼을 게재하고, 방송 활동도 하고 있다. 안 목사는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인 만학의 학구파이기도 하다. 지난해는 봉사활동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태운 적도 있지만, 마지막 학기 등록금 역시 미리부터 걱정 안한다고 숙연한 모습을 보인다.   

 

“혼자 하지만, 간혹, 몇몇 분의 후원으로 주님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감사하며 행복하다.”고 밝게 웃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이 탓인지 봉사가 무척이나 힘들어졌지만 ‘때가 되면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 포기 할 수도 없다.”며 ‘구정’(舊正)때 봉사를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고 나름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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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쉼 없는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본인의 사명임을 깨달아 사회 속에 뛰어들어 예수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안호원 목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또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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